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부산 마리아 참살사건 (문단 편집) === 제3의 인물 === 이에 조선인의 반발을 잠재우고자 제3의 인물 이노우에 슈이치로(井上修一郞)을 용의자로 체포하였다. 철도국 공제조합 용산배급소 근무 당시부터 다카하시 부부와 면식이 있었으나 이노우에가 부산으로 발령난 후 마사미가 부산으로 영전하자 히사코와 수시로 만나게 되어 히사코의 정부라는 소문도 돌았다. 사건 당일 오후 8시경 로이드 안경을 쓴 30대의 사나이가 있었는데 이노우에가 머리를 특별히 깎았고 불교로 개종했으며 이노우에는 추잡한 관계를 맺었으며 오오하시 부부가 철도국장의 장례에 참가하느라 자리를 비웠을 틈을 타 마리아와 관계를 맺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다만 살해 이유는 밝혀내지 못하였다 결국 이노우에의 우발적 범행으로 판명났고 필적 감정 및 사건 직후 개명, 행실 등으로 보아 이노우에의 범행이 의심되어 자백을 받아냈으나 히사코가 깨지 않았다는 점, 수법이 잔인했다는 점, 알리바이, 부검 결과 등이 맞지 않았다. 결국 진술까지 번복하였다. 번복한 진술에 따르면 이노우에가 다카하시 부인과 밀회를 즐기다 마리아에게 발각되었는데 마리아를 해고할 구실이 없자 살해하자고 했다. 결국 주범은 히사코, 종범은 이노우에인 셈이었는데 [[일사부재리]]의 원칙으로 인해 히사코는 기소되지 않았고 이노우에만 기소되었다. 1934년 1월 27일 결심공판에서 이노우에의 단독범행으로 결론을 내렸고 이노우에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지만 히사코가 주범, 이노우에 류우를 공범으로 내놓았다. 하지만 이 또한 2심 재판에서 뒤집혀 이노우에를 무죄로 석방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